Last updated : 2021년 07월 29일

이세돌, 커제 그리고 알파고 이후의 ‘신공지능’ 신진서

이세돌 9단과 알파고(AlphaGo)의 ‘세기의 대결’이 있기 전에 인공지능(AI), 5G, 사물인터넷, 자율주행차 등으로 대변되는 ‘4차산업혁명’은 우리에게 먼 이야기처럼 들렸다. 2016년 2월, […]
Written by : 관리자

이세돌 9단과 알파고(AlphaGo)의 ‘세기의 대결’이 있기 전에 인공지능(AI), 5G, 사물인터넷, 자율주행차 등으로 대변되는 ‘4차산업혁명’은 우리에게 먼 이야기처럼 들렸다. 2016년 2월, 구글이 개발한 인공지능 알파고와 당대 최고 기사인 이세돌 9단의 맞대결을 알리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예상 승부를 묻는 질문에 자신만만했던 이세돌 9단은 5-0을 예상하지만 혹시 본인이 실수해서 한판 진다고 해도 4-1 정도로 자신이 이길 것이라고 예상했다. 유럽 챔피언이 알파고에게 전패를 했다는 데이터를 보고도 이세돌 9단은 ‘이거 뭐 해보나마나 한 것 아니야?’라는 정도의 자신감으로 가득찼다.

2016년 3월 10일, 세기의 대국이 시작됐다. 첫 판부터 무너진 이세돌 9단은 당황했으며, 만만치않을 승부를 예감했다. 결국 2, 3국의 패배로 0-3이 되면서 인간의 패배는 확정됐다. 이세돌 9단의 1,2국 패배를 지켜보던 커제 9단은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길 수는 있어도 나를 이길 수는 없을 것"이라는 등 자신감 넘치는 말을 쏟아냈으며 "인류 대표 자격이 없다"는 등 독설까지 날렸다. 하지만 3국에서도 이세돌 9단이 패하자 그 기세는 좀 누르러졌고, 자신도 질 수 있다는 의견도 내비쳤다. 3국이 끝난 뒤 이세돌 9단은 “알파고가 굉장히 놀라운 프로그램이지만, 신의 경지에 오른 것은 아니다. 분명히 인간과는 우월한 점을 보여줬지만 분명히 약점이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어 오늘의 패배는 이세돌이 패배한 것이지, 인간이 패배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인상 깊은 코멘트를 남겼다.

결국 0-5의 완패를 예견하는 의견이 다수를 차지한 가운데 반전은 생겼다. 4국에서 이세돌 9단의 ‘신의 한수’가 먹히면서 인공지능을 이긴 최초이자 마지막 인간으로 기록되면서 체면치레는 했지만 5국에서 패해 최종 1-4로 완패했다. 이세돌 9단의 패배에 “인공지능, 인간을 넘다”라는 제목으로 1면 톱을 장식했다. 이렇게 많은 언론 매체들이 바둑과 관련된 소식으로 1면 톱을 장식한 것은 아주 이례적이다.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세기의 대결’을 계기로 우리나라 국민들은 ‘4차산업혁명’에 대한 공포심과 기대감을 체감하고 인공지능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 충격은 마치 영화 터미네이터에서 기계와 인류가 전쟁을 벌이는 공포심에 버금갔다. 만약 이세돌 9단이 5-0으로 이겼다면 4차산업혁명에 대한 관심도는 오히려 그렇게 높아지지 않았을 것이다.

여담이지만 당시 이세돌 9단은 5번의 대국을 통해서 승리할 경우 상금 100만 달러를 받기로 했으며, 별도로 5번의 대국료로 15만 달러, 판당 승리 수당 2만 달러를 받기로 했다. 물론 돈 때문에 대국을 수락한 것은 아니겠지만 당시 일각에서 상금을 500만 달러 혹은 1000만 달러를 요구해도 구글 측이 받아들였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만큼 판이 커지면 커질수록 흥행은 더할 것이고 무엇보다 구글이 간절한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이 세기의 대결이 진행되는 1주일 동안 구글의 시가총액은 58조원이 늘어난 것을 보면 아쉬움이 남는다. 결국 알파고가 승리하면서 딥마인드는 상금을 유니세프와 과학기술 교육 및 바둑관련 자선단체 기부했다.

‘시기의 대결’이 끝나고 2016년 6월 26일부터 28일까지 중국 톈진에서 열린 하계다보스포럼(Davos Forum)에서 클라우스 슈밥(Klaus Schwab)이 의장이 이슈화하면서 전세계는 본격적으로 4차산업혁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렇게 1여년 뒤, 구글은 세계 최강으로 인정받고 있는 중국의 커제 9단을 상대로 확인 사살에 나섰다. 커제 9단은 2017년 5월 23일~27일 중국 저장성 우전(烏鎭)의 인터넷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알파고와 '바둑 미래 서밋' 3번기를 펼쳤지만 예상대로 0-3 완패했다.

최종국 제3국 때 커제는 힘겹게 버티면서 백126으로 붙이는 수를 둔 후 자리에서 일어나 홍보물 벽 뒤 카메라가 없는 구역으로 가서 조용히 혼자 눈물을 흘렸다. 한참 지나도 자리에 돌아오지않자 심판이 가서 보니 커제가 소리내어 울고 있었다. 10여미터 떨어진 곳의 관전석에 앉아있던 기자들은 들을까봐 커제는 꾹 참으려고 했지만 우는 소리는 너무 뚜렷하게 들렸다. 대국이 끝난 뒤에도 패배에 대한 분함이 가시지 않았는지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대국 후 기자회견 장에서 커제는 “저는 알파고 수의 절반 정도밖에 예측하지 못했다. 실력차이가 실제로 아주 컸다. 알파고에게 감사드리고 이후 더 노력하겠다. 미래에는 더 차이가 커질 것 같다. 알파고팀이 이렇게 완벽한 기사(棋士)를 만들어 낸 것이 대단하고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커제는 “내 평생 이런 바둑은 둘 수 없을 것이다. 미래에 이렇게 둘 수 있는 인간은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실력차이가 너무 난다. 내가 평생 몇 판의 바둑을 둘 수 있겠는가? 5~6만판 정도인데 인공지능은 하루에 둔다. 인공지능은 하루에 내가 평생 둘 바둑을 둘 수 있고, 훈련하고 또 훈련한다”라며 인공지능을 뛰어 넘을 수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특히, 그가 바둑판 앞에서 눈물을 훔치고 있는 모습은 아주 깊은 인상을 남겼다. 훗날 커제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울고 있는 사진에 대해서 “그 사진은 아마도 전세계에 모두 퍼졌을 것이다. 이 사진에 관한 비하인드스토리를 이야기를 하자면 내가 알파고에게 0-2로 뒤진 후 밤새 잠을 못 잤다. 나는 줄곧 내가 어떻게 알파고를 이길 수 있을까, 약점은 없을까, 한판이라도 건지면 좋겠다 등 많은 생각을 했다. 제3국에서 나는 전력을 다해 1승을 거두려고 했다. 사실 2국때 내가 포석에서 앞섰는데 포석에서 앞서면서 희미하게나마 승리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봤다. 3국에서 나는 필사적이었다. 그러나 초반 포석에서 나는 아주 치명적인 실수를 했다. 중반에 기회를 엿보았으나 알파고는 정말 완벽했다. 알파고는 정말 냉정한 수만 두어 나를 절망으로 몰았다. 알파고와 대국이 끝나고 나서 평생 알파고를 이길 수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라며 당시 심경을 소개했다. 다소 핀트가 엇나간 궁색한 설명이지만 알파고에 대한 완벽한 패배는 인정한 셈이다.

2018년 1월 17일, 커제는 인공지능 ‘절예지도A’와 두 점 접바둑 도전에 나섰으나 77수만에 돌을 거뒀다. 세계정상급 기사가 처음 두 점을 깔고 인공지능에게 무릎을 꿇은 사건이다. 이후 커제는 ‘프로기사와 인공지능의 차이’라는 제목의 SNS 글에서 “앞으로 저를 유유자적한기사(佛系棋手)라고 불러달라”라며 ‘절예지도A’에 패한 심경을 밝혔다. 그러면서도 “나는 아직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심리적인 변화는 아주 컸다. 나이가 많지않지만 AI에게 자존심을 내려놓고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다. AI앞에서 자존심이 밥 먹여주나? 나는 바둑을 아주 좋아한다. 어느 정도 차이가 나는지 모르겠지만 절대 석 점은 넘지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인공지능이 급속히 발전하면서 프로기사와 AI의 차이는 도대체 얼마인가라는 화제는 항상 관심거리다. 이제 프로기사들 사이에서는 최강 인공지능과의 치수는 ‘석점’이라고 의견이 모아지고 있으며, 심지어 ‘넉점’이면 해볼만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넉점에도 만만치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이세돌 9단과 커제 9단의 인공지능 대결 이후 주목받고 있는 인물은 '신공지능(申工智能)'으로 불리는 신진서 9단이다. 신진서 9단은 '인공지능(AI)'이 제시하는 최선의 수인 ‘블루스팟’을 가장 잘 맞힌다고 해서 이런 별명이 붙었다. 지난해 연간 승률 88.24%로 이창호 9단이 보유했던 종전 기록을 32년 만에 경신한 신진서 9단의 ‘촉(觸)’은 이미 세계 최강의 모습이며, 인공지능에 가장 근접한 기사로 꼽힌다.

2020년 6월 최고기사결정전 결승전에서 신진서 9단와 박정환 9단의 대국을 지켜본 커제는 신진서의 행마에 “人形AI”라고 칭찬을 했다. 또 다른 중국 인터넷 대국실의 해설자는 “절예(絕藝, FineArt)도 인간의 영역을 넘어섰지만, 신진서는 정말 알파고 같다”라며 감탄했다. 이에 중국의 네이버로 불리는 바이두(百度)에서 검색어로 ‘申工智能’’을 검색하면 연관어로 ‘申工智能 圍棋’, ‘申工智能 申真諝’ 등의 검색어가 자동으로 나올 정도다.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인공지능 출현 이후 가장 강한 기사가 되고 싶다”는 의지를 밝혔던 신진서 9단은 새해 목표로 "세계 대회에서 단 한 번도 지지 않는 것"이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지금은 온라인으로 누구든 언제 어디서든 최강의 인공지능 바둑프로그램과 대국을 즐길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알파고 이후 텐센트(騰訊)가 개발한 '절예', 페이스북이 내놓은 '엘프고', 벨기에의 릴라제로(Leelazero), 미국의 카타고 등이 등장했다. 특히, 카타고는 릴라제로나 엘프고를 뛰어넘는 실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오픈 소스를 사용해 누구나 쉽게 접근이 가능하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이어 벌어진 각종 세계대회에서 각 종 대회를 휩쓸며 세계최강 인공지능 바둑프로그램으로 군림한 것은텐센트가 만든 절예다. 절예는 2016년 개발되어 각종 세계인터넷바둑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중국기원 국가대표 공식 훈련 프로그램이기도 한 절예는 세계정상급 기사들을 상대로 59연승을 거두는 저력을 보였다. 이어 UEC우승을 차지한 버전이 업드레이드 되면서 커제 9단, 롄샤오 8단 등에게 2점을 접어주고도 승리를 거두며 최고의 절정을 맞는다.

하지만 2018년 8월, 2018중신증권배 인공지능세계바둑대회에서 골락시(星陣,Golaxy)가 등장하면서 절예와 골락시는 최정상 자리를 놓고 다퉜다. 둘은 2019중신증권배 결승전에서 맞붙어 절예가 4-1 승리를 거뒀지만 이후 비공식 대결에서 골락시가 승리를 거두면서 둘은 인공지능의 쌍벽을 이뤘다. 가장 최근인 2020년 9월~12월 벌어진 복건해협은행배 인공지능세계바둑대회에서는 절예가 불참한 가운데 골락시가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최강자임을 선포했다.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세기의 대결’이후 인공지능 바둑프로그램은 엄청난 발전을 해 왔지만 사실 구글 딥마인드의 목적은 세계 최강의 바둑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바둑은 매번 수많은 경우의 수 가운데 최선의 수를 찾아내어야 하는 인공지능 테스트에 가장 적합했던 시험 무대였다. 이에 구글 딥마인드 측은 이 대전이 끝난 뒤 중국바둑협회로부터 바둑 9단 칭호를 받은 알파고가 의료분야에 응용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실제로 구글의 AI는 의료 분야에서 이미 맹활약을 하고 있다. 2017년 11월 구글 연구진이 딥러닝 알고리즘이 90%이상의 정확도로 당뇨병성 망막증의 병리변화를 측정해 낼 수 있고, 림프절 주변 암의 전이 방향을 정확하게 89% 정도 예측하여 인간 의사의 정확도 73%보다 높게 나타났다.

바둑은 인공지능 발전의 하나의 초석이 됐다는 점에서 이미 그 역할을 다해줬다. 인공지능 기술이 인간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인간을 더 이롭게 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인간의 머리 속에 존재하지 않는 ‘신의 한수’를 이해하려고 애 쓸 필요는 없다. 인간끼리 마주 보면서 나누는 수담은 라면 스프로 낼 수 없는 어머니의 손맛 같은 나름대로의 맛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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